역사적으로 서구에서 객관성은 1920년대에 제도로 정착되었으며, 불편부당과 셋트로 규범화되었다. 예를 들면, AP통신은 비정당적, 사실적 보도, 불편부당(impartiality)을 규범으로 내세웠다.
미국신문편집인협회(American Society of Newspaper Editors)에서도 1920년대 초에 저널리즘의 윤리강령으로 성실성, 진실성, 정확성, 그리고 불편부당을 채택했다. 이중 뒤늦게 추가된 불편부당은 의견과 편향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변덕스럽고 위험한 여론을 관리하면서 급증하는 보도량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객관성’이 직업규범으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학자는 양차 대전 사이에 객관성이 보편적 언어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당시 문화적 상대주의와 기업적 자본주의가 등장하자, 이러한 변화에 대한 기자의 방어전략으로 객관성이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객관성은 서구사회에서 기자의 직업적 이데올로기의 초석이 되었다.
일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초기신문이 상업신문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당파적인 입장에서 보도할 경우에는 독자층이 정해져 있다. 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편집방침을 수정해야 하며, 뉴스의 품질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부수를 확대하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메이지 초기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정론지(소신문)에서 대중신문(대신문)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신문자본은 당파적인 기관지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불편부당과 객관보도를 저널리즘의 원리로 내세우게 되었다.
보도와 논평의 분리라는 보도양식을 도입해 발행부수를 늘리면서 성장한 신문산업은 1918년 ‘핫코사건’(白虹事件)을 계기로 불편부당과 객관보도를 보도강령으로 명기했다. 이러한 원리는 신문산업에서 일반화되었다.
핫코사건은 오사카아사히신문에 대한 필화사건이다. 당시 시베리아 출병을 준비한 쌀 매점으로 쌀값이 폭등해 전국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보도금지를 비판한 기자집회를 보도하면서 오사카아사히신문은 혁명을 의미하는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다’를 사용했다.
위기에 직면한 당시 내각은 신문지법를 위반했다며 발행금지처분을 내렸으며, 우익단체가 오사카아사히신문에 난입했다. 오사카아사히신문은 책임자를 인책하고, 불편부당과 공평무사, 정확신속한 보도 등을 포함한 보도강령을 발표하는 대응에 나서 폐간을 면했다. 그러나 비판적인 논조는 급속하게 약화되었다.
이후 신문은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잃었으며, 스스로 비판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무뎌진 신문은 군국주의의 프로파간다로 전락하게 되었다. 신문과 라디오는 전쟁을 부추기고 앞다투어 청년들을 전쟁으로 내몰았다.
패전 이후 사회의 목탁인 신문이 군국주의의 잘못된 판단을 비판하지 못한 채 이에 동조하고 협력해 막대한 인명과 재산을 잃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에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 진보적인 신문은 통렬한 반성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고자 했다.
패전 이후 점령군 총사령부(GHQ)의 점령정책을 통해 불편부당과 객관보도를 저널리즘의 중요한 규범으로 정착했다.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 GHQ는 일본신문각서(Press Code)와 일본방송각서(Radio Code)를 통해 ‘뉴스는 엄격하게 진실에 부합해야 한다’, ‘뉴스는 사실에 의거해 편집에서 의견은 완전히 피해야 한다’, ‘사실에 의거해야 한다’는 등의 객관보도 관련 항목을 명기했다.
또한 GHQ의 권고와 의견을 바탕으로 설립된 일본신문협회는 1946년 신문윤리강령을 마련했다. ‘보도의 원칙은 사건의 진상을 정확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뉴스의 보도에는 절대 기자 개인의 의견을 삽입해서는 안 된다’ 등을 규정해 부평부당과 객관보도를 구체화했다.
이후 대부분의 신문사와 방송사가 불편부당, 객관보도, 공평공정 등을 신문강령 혹은 방송기준으로 내세우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식 불편부당과 객관보도의 원칙은 저널리즘 원리로 자리잡았으며, 저널리즘의 상식이 되었다.
특히 방송의 경우, 인쇄미디어와는 달리, 불편부당이나 객관보도와 깊이 관련된 조항이 법률로 규정되었다. 전후 일본의 방송은 일본방송각서를 통해 GHQ 통치하에 들어 갔다. 1950년 성립된 방송법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불편부당, 정치적 공평, 사실보도, 다각적 논평 등 이른바 ‘프로그램 편집준칙’을 통해 객관보도의 원칙이 부과되었다.
이러한 프로그램 편집준칙은 전파감리위원회라는 독립행정위원회와 셋트로 명문화되었다. 그러나 점령이 끝난 뒤에 행정권은 우정성에 이관되었지만, 프로그램 편집준칙은 그대로 남아 오늘날까지 방송을 규제하는 대표적인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유의해야 할 것은 전파법에 면허인이 방송법 등의 법률에 의거한 명령이나 처분을 따르지 않을 경우, 총무성 장관은 운영정지 등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면허취소와 운영자 처벌까지 규정하고 있다. 이는 행정의 개입을 정당화한 것이다.
나아가 프로그램 편집준칙은 방송사의 면허와 재면허 신청에서 중요한 심사기준으로 작용한다. 공평공정을 포함한 프로그램 편집준칙은 부분적으로는 규범적인 지침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당시 정치권력이 방송사업자를 위협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방송의 자유는 위축되었다.
보도기관에는다양한 규범이 요구된다. 공영방송은 더욱 엄격하다. BBC는 불편부당(impartiality)과 객관성(objectivity)을 전문직의 윤리로 제시해 왔으며, 이는 BBC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인정받아 왔다.
NHK는 불편부당, 공정·중립을 내세우며, 정치권력도 이를 요구한다(참고: 공공미디어 NHK). 물론 이러한 규범개념은 공영방송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공정성(fairness), 객관성(objectivity), 불편부당(impartiality) 등은 모든 보도기관과 기자가 준수해야 할 중요한 제도적 규범 내지는 직업규범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범개념은 애매하며, 유사한 개념들이 혼용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규범성을 잃어가고 있다. 또한 이들은 보도기관이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장해 온 개념인 동시에, 외부에서 준수를 요구하는 통제의 수단이기도 하다. 디지털시대에도 이러한 규범이 유용한지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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