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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송의 공정성과 규제기관

서론: 일본 방송제도의 모순

일본의 방송규제제도는 모순이 가득하다. 이러한 모순의 출발은 방송규제기관이다. 일본에서는 총무성이 방송의 진흥과 규제를 담당한다. 방송법에서는 방송의 공정성 관련 규정이 있지만, 이를 집행하는 기관이 국가기관이라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방송규제는 독립위원회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군정기를 제외하고 국가기관이 규제를 담당해 왔다. 언론의 감시대상이 내용규제를 담당하는 형태로 헌법과 방송법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저촉된다. 방송법에서는 편집의 자유도 보장하고 있는데 이를 규제하는 기관도 총무성이다.

방송의 공정성 규정

프로그램 편집준칙

일본에서 공정성은 명확한 개념규정이 없으며, 불편부당이나 객관보도, 공평성을 사용하기도 한다(일본에서 공정성과 불편부당은 ‘객관보도와 공정성‘을 참고할 것). 방송법에서는 편집준칙(제4조)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

  • 공안 및 미풍양속을 해치지 말 것
  • 정치적으로 공평할 것
  • 보도는 사실을 왜곡하지 말 것
  •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문제는 다양한 관점에서 논점을 분명히 할 것

이는 NHK와 민방에 모두 적용되는 규정이다. 이러한 편집준칙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규정일까, 아니면 방송사업자가 준수해야 할 윤리규정일까? 이에 대한 논란을 계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디어법 연구자는 윤리규정을, 총무성은 법적 구속력을 주장한다.

일본 방송의 공정성과 규제기관

원래 총무성이나 그 전신인 우정성도 윤리규정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보수정권, 아베 정권에서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규정이라는 견해로 수정했다. 예를 들면,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는 2016년 3월 국회 답변에서 위반시 행정처분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총무성의 견해

이 발언을 계기로 총무성은 새로운 견해를 만들었다. 즉 편집준칙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며, 이를 판단하는 것은 총무대신이라고 했다. 정치적 공평성은 프로그램 전체와 함께 개별 프로그램도 봐야 한다고 했다. 특히 선거보도에서는 개별 프로그램에서 공평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편집준칙을 위반했을 경우에는 총무성이 행정지도를 내릴 수 있다고 했다. 행정지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를 위반했을 경우에는 총무대신이 전파 정지 등이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견해까지 포함시켰다.

편집준칙이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이를 판단하는 주체가 독임제 행정기관인 총무성이라는 점이다. 집권세력이 방송의 정치적 공평성을 판단하고 규제한다는 것이다. 이에 미디어법 연구자는 총무성이 규제를 담당하는 상황에서는 편집준칙을 윤리규정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 것이다.

방송규제기관: 총무성

방송규제 강화 움직임

독임제 행정기관이 행정지도와 행정처분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제도는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견해도 바뀌기 시작한 것은 방송업계의 문제이다. 1993년 7월 실시된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과반수를 얻지 못해 호소카와 정권이 탄생했다.

총선거 2개월 뒤에 일본민간방송연맹에서 열린 방송프로그램조사회에서 TV아사히의 츠바키 보도국장이 자민당 정권을 저지하고 연립정권이 출범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보도하려 했다는 발언이 보도되면서 우정성이 즉각 나섰다. 방송법을 위반했다면서 무선국 운용정지도 가능하다고 압박했다.

결국 츠바키 보도국장은 그만두었으며, 편향보도를 부정했다. TV아사히는 우정성에 조사보고서를 제출했다. 우정성은 면허취소를 연기했으며, 엄중주의라는 행정지도를 내렸다. 이후 NHK와 일본민간방송연맹은 방송윤리기본강령을 마련하고 자율규제기관을 설치했다.

NHK와 일본민간방송의 자율규제기관

방송업계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정성과 자민당이 나서서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정부가 외교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그동안 감춰두었던 의도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우정성은 방송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활용한 것이다.

우정성과 총무성

우정성은 2001년에 정부조직개편을 거쳐 자치성, 총무청과 함께 총무성으로 통합했다. 우정성 조직은 정보유통행정국, 종합통신기반국, 우정기획관리국으로 이동했다. 이후 2008년 7월에 총무성은 조직개편을 거쳐 우정행정국과 정보통신정책국, 종합통신기반국, 국제부를 통합해 정보통신국제전략국을 설치했으며, 정보통신행정국, 종합통신기반국으로 개편되었다. 2017년 9월에 정보통신국제전략국은 국제전략국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2018년 7월에는 사이버보안총괄관이 신설되었다.

방송행정이 내치를 담당하는 부처로 옮긴 것이다. 정부조직에서 문화를 담당하는 부처는 문부과학성이다. 우정성이 문부과학성이 아니라 총무성에 편입된 것은 일본정부가 방송을 어떻게 보는지 드러낸다. 방송행정은 문화가 아니라 내치의 영역으로 전락한 것이다.

독임제 규제 보완장치

이러한 후진적 규제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심의회와 자문회의, 프로그램 심의기관, 자율규제기관 등이 있다. 심의회는 총무대신 법정자문기관이며, 방송통신분야에는 전파감리심의회와 정보통신심의회가 있다.

전파감리심의회는 전파법에서, 정보통신심의회는 총무성조직령에 의거한다. 이들 조직에는 대학교수와 연구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다. 방송행정을 기획하고 입안할 경우에 중요한 사안은 이들 심의회의 자문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송법에서는 방송사마다 프로그램 심의기관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부 인사를 심의위원으로 임명해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듣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율규제기관으로는 방송윤리프로그램향상기구(BPO)가 있다. BPO는 NHK와 일본민간방송연맹이 공동으로 설립한 제3자기관이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업계 단체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결론: 독립위원회 도입 논의

그동안 우정성과 총무성은 독임제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방송행정을 행정기관에서 분리해 독립성을 가진 합의제 독립위원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2009년에 출범한 민주당정권에서는 일본판 FCC 설치 구상이 있었다. 전문가회의에서 논의를 했지만, 찬반이 엇갈리고 총무성의 반대로 결국 실행에 이르지 못했다.

일본정부에 독립규제위원회가 없는 것이 아니다. 원자력규제위원회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카지노관리위원회 등 10개 행정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방송분야에서도 독립규제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지만, 총무성 규제를 고집하고 있다.

2017년 6월 UN인권이사회 특별보고자가 방송미디어 관련 독립규제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본정부는 방송사업자의 자주자율이 보장되어 있으며, 방송사업자단체도 반대한다고 반박했다. 총무성은 방송의 공정성을 규제할 뿐만 아니라 면허, 인허가권, 지원권 등도 가지고 있어 방송사업자에게는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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