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근로기준법과 제작환경 

서론: 젊은 제작진의 죽음

2016년 10월 종합편성채널 tvN의 이한빛 PD가 과로와 직장내 괴롭힘을 못 견뎌 자살했다. 그는 드라마 촬영기간 55일 중에 고작 2일 밖에 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은 재방방지를 요구했으며, 프로그램 제작진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단법인을 설립했다.

안타까운 젊은 제작진의 죽음 이후 방송제작 현장의 노동환경은 크게 변했다. 특히 2018년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었다. 개정근로기준법의 시행에 따라 제작현장의 근로조건 개선 움직임을 살펴본다.

근로기준법과 콘텐츠 제작현장

개정근로기준법

개정근로기준법에는 법정 근로시간이 명기되었다.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 1일 8시간이 상한으로 규정되었으며, 잔업은 12시간을 넘을 수 없게 되었다. 잔업을 포함하면 주당 노동시간은 이전에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크게 단축되었다.

또한 휴일에 근무할 경우에는 수당 할증률을 적용하도록 명기되었다. 특례업종에 해당했던 프로그래 제작현장에서 특례업종은 크게 줄었다. 유연노동시간제도 보완이 뒤따랐다. 탄력적 노동시간제, 선택적 노동시간제, 재량노동제 등의 유연노동시간제도 변하기 시작했다.

근로기준법과 콘텐츠 제작현장

개정근로기준법의 시행을 따른 콘텐츠 제작현장의 대응을 정리한다. 우선 방송사는 24시간 방송을 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잔업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개정근로기준법의 시행으로 방송사도 대응을 서둘러야 했다. 방송사는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었으며, 주52시간제가 적용되었다.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제작진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제작비 상승을 의미한다. 

근로기준법과 콘텐츠 제작현장

대표적인 장시간 노동현장으로 알려진 드라마 제작현장에서는 근로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1일 평균 노동시간은 2018년에 15.2시간에서 2019년에는 12.2시간으로 3시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당 근로일수도 5.6일에서 3.5일로 줄었으며, 주당 평균 잔업시간도 28.5시간에서 14.1시간으로 크게 감소했다.

방송사는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KBS는 2018년에 입사한 기자부터 특정 장소에 대기하며 취재한 뒤 보고하는 이른바, ‘하리꼬미’ 시스템을 페지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자를 늘려야 하며, 이는 임금체제도 손봐야 한다. MBC와 SBS는 2019년에 드라마 편성 수를 줄였다.

노사협의회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상파방송사와 언론노동조합, 드라마제작사협회, 방송스태프노조가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 협의회는 우선 제작환경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또한 주당 52시간에 맞춰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장시간노동을 개선해 가기로 했다. 2019년 9월에는 드라마 스태프 인건비 기준과 노동계약서 양식을 만들어 현장에서 사용하기로 했다. 

근로환경 개선의 최대 쟁점은 유연노동시간제이다. 방송사는 예능이나 드라마 제작부서에 재량노동제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방송3사는 직군별 유연한 근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송사는 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 없는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부문은 재량노동제를, 업무시간이 불규칙하고 노동시간이 긴 시사교양과 보도 부문은 선택적 노동시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조는 이에 반대한다. 재량노동제는 노동시간을 단축해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주52시간제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만으로 근로제도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업무시스템과 제작환경 등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프로그램 제작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제작현장에는 다양한 직종이 모여 협업한다. 핵심은 근로자성(사용종속성)이다. 제작현장의 스태프를 모두 노동자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팀장 등의 스태프로부터 지휘와 감독을 받는 경우만 사용종속성이 인정된다. 이에 대한 입장은 고용노동부와 노동자 측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

근로기준법과 콘텐츠 제작현장
근로기준법과 콘텐츠 제작현장

한편 노동시간 산정기준과 급여지급 방법, 노동계약서 체결 등도 쟁점이다. 방송사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역무계약과 팀 단위로 계약하는 턴키(turnkey) 계약을 이용해 인건비를 줄여 왔다. 제작현장은 노동시간이 명확하지 않아 노동시간과 상관없이 일당으로 지급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비정규직에게 노동시간은 수입과 직결된다. 계약직이나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은 노동시간이 줄면 수입도 줄어들게 된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동시에 비정규직의 임금체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제도개선의 의미를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근로기준법과 제작관행

프로그램 장르에서도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의 제작관행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들 장르의 제작현장에는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 있다. 방송사는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의 편성시간을 경쟁적으로 늘려 왔다. 이에 프로그램 편수가 늘어났으며, 스태프의 노동시간도 증가했다.

온라인 전송시대 콘텐츠 제작현장
온라인 전송시대 콘텐츠 제작현장

드라마의 경우, 지상파방송은 매주 2회, 종합편성채널은 주당 90분을 편성하고 있다. 방송업계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매회 40분, 주 1회 편성 등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OTT의 보급으로 드라마와 같은 스토리. 콘텐츠를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에 방송사는 드라마 편성을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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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사전제작과 반사전제작을 통해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하다. 많은 드라마가 제작을 모두 마친 뒤에 방송되는 것이 아니라 제작하면서 방송시간에 맞춘다. 제작 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철야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전제작이 정착하지 않은 것은 제작비와 시청률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 수출과 OTT의 보급으로 제작시스템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결론: 모두의 워라벨을 위해

한편 지상파 4사는 2018년 9월에 전국노동조합과 공정보도와 제작환경 개선 등을 포함한 산업별 노동협약을 체결했다. 노사는 법정 노동시간을 지키고, 어쩔 수 없이 노동시간이 연장된 경우에는 연장, 철야, 휴일노동에 맞는 대가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일단 방송업계가 보조를 맞추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방송산업은 크리에이브 산업이나 창조 산업이니 하지만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다양한 직종에서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이들 제작스태프의 노동환경은 콘텐츠의 질과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콘텐츠를 위해, 그리고 모두의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위해서도 근로조건 개선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