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 특히 나쁜 일은 더욱 그런 것같다. 2016년 12월 광화문광장은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퇴진과 구속을 외쳤다. 남녀노소가 모인 광장에서는 구호뿐만 아니라 공연과 영상상영, 자유발언 등이 넘쳐나는 열린 공간(arena)이었다. 이는 다름 아닌 공론장(public sphere)의 재현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일찌기 언론은 공론장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박 정권 하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저널리즘의 기본이념은 약화됐으며, 언론의 자유도 위축됐다. 이는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6년에 한국은 180개국 중에 70위로 추락했다. 박 정권이 출범한 2013년에는 50위였는데, 2014년엔 57위, 2015년에는 60위로 계속해서 후퇴했다.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개명: 최서원)의 국정개입이 드러났지만, 방송3사는 보도에 소극적이었다. 종합편성채널과 팟캐스트에서는 매일 새로운 사실을 보도했다. 청와대는 계속해서 해명했지만, 이는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폭로와 해명, 새로운 폭로,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박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으며, 이후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다(참고, 탈진실시대의 선거보도와 팩트체크).
최초로 보도한 것은 TV조선이었다. TV조선은 2016년 7월 문화재단의 자금모집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반박하자 TV조선은 꼬리를 내렸다. 2개월 뒤인 9월 20일 한겨레신문이 처음으로 최순실의 이름을 보도했다.이어 경향신문과 JTBC, 채널A 등이 뒤따랐다. 비판이 거세지자 박 대통령은 10월 24일 국회연설에서 헌법개정을 제안했다. 반전을 노렸지만, 이날 JTBC 뉴스룸은 최순실의 태블릿PC에서 정부기밀문서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박 대통령은 사과했지만, 최순실의 국정개입은 부정했다. 그러나 JTBC와 TV조선에서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후 거의 모든 언론이 뛰어들었으며, 속보경쟁이 치열해졌다. 결국 SBS가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이어 KBS, 마지막으로 MBC도 뛰어들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지상파방송에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시위현장에서 KBS와 MBC의 기자는 쫓겨 났으며, 중계차에는 “너희도 공범이다” “각성하라”는 스티커가 붙었다. YTN도 항의를 받았다. 방송저널리즘이 땅에 떨어졌다.
이번 보도경쟁에서 지상파방송은 신뢰가 추락했지만, 비주류였던 종편이 부상했다. 특히 JTBC의 보도가 주목을 받았다. JTBC 뉴스룸은 6주 연속으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뉴스룸은 10월 말에 평균시청률 8%대로 상승했다. 이후 특종이 계속되면서 8~9%대를 오르내리며 지상파방송을 앞섰다. 11월 하순에는 10%에 육박하게 되었다. 반면 지상파방송은 신뢰는 추락했다.
지상파방송은 왜 짓지 못하는 감시견으로 전락했을까? 박 정권는 언론을 통제해 왔으며, 권력의 눈치를 보는 언론인도 적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담화에서 방송을 장악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 정권의 언론통제는 집요하면서도 디테일했다. 박 정권의 언론통제는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김 전 수석은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재직중 수석비서관 회의내용을 기록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에 따르면, 박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정무수석, 홍보수석 등이 총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위협한 박 정권의 미디어정책은 독재시대를 방불케한다. 핵심은 비판적인 보도에는 수사와 세무조사, 소송 등으로 협박하고, 우호적인 미디어에는 광고를 제공하거나 간부를 요직에 기용하는 등 이중정책이다.
박 정권의 방송보도에 대한 통제방식은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청와대는 공영방송사의 이사와 사장 등의 인사에 개입했다. KBS와 MBC, EBS의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서 임명한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 KBS의 이사와 사장 등을 친정부성향의 인사로 앉혔다. KBS이사는 방통위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2014년 7월 청와대의 의도와는 달리 조대현 사장이 임명되자, 청와대는 방통위를 통해 이길영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후임으로 보수성향의 이인호 교수를 이사장에 앉혔다. 이후 2015년 10월 고대영 사장의 선임과정에서도 청와대 홍보수석과 이인호 이사장이 사전협의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KBS노조는 “사상 최악의 부적격 후보”라며 총파업 등을 불사하겠다고 반발했다.
MBC사장의 임명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도 친정부인사로 채워졌다. MBC의 최대주주이자 감독기관인 방문진 이사 9명 가운데 6명이 여당 추천 인사이다. 특히 고영주 이사장 등 이사 3명은 극우성향의 인사로 알려졌다. 이들은 보수성향의 사장선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EBS사장의 선임에도 관여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한편 공영방송뿐만 아니라 청와대는 유료방송업계에 낙하산으로 청와대 출신 인사를 내려보내기도 했다. 2015년에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 IPTV방송협회 회장,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Skylife) 대표가 청와대 홍보수석과 홍부기획비서관을 지낸 인사로 채웠졌다. 이들은 보도기관을 거쳐 청와대로 들어간 뒤, 관련단체장으로 재취업하는 회전문인사의 수혜자이다.
둘째, 청와대는 방송보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보도규제는 ‘낙하산’으로 임명된 이사와 집행부가 활용되었다. 이들은 편집권을 내세워 정부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역할을 다한 것이다. 이들은 제작현상에서 지시에 불응할 경우에는 인사권을 활용해 한직으로 보내거나 소송을 제기하거나 안되면 해고도 서슴지 않았다.
2014년 5월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길 사장이 청와대의 압력으로 자신의 사퇴를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길 사장이) 보도에 지속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KBS기자협회 등 내부에서 길 사장 퇴진운동이 일어났으며, 결국 KBS이사회는 2014년 6월 길 사장의 해임을 결의했다. 김 전 보도국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에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이 보도에 개입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또한 KBS간부는 ‘보도지침’에 불응하는 제작진을 징계했다. 2016년 7월 사드배치 반대시위에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는 보도를 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이에 따르지 않자 해당 기자를 징계했다. MBC는 경영진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반골’ 저널리스트를 제소하거나 해고해 왔다.
한편 채널A 청와대25시는 청와대의 직접 개입으로 폐지되었다. 2015년 1월 3일 방송에서 캐스터는 박 대통령을 ‘세습정치’라고 했으며, 패널은 박정희 전대통령을 ‘왕’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방심위는 객관성을 결여했다는 이유로 심의를 시작했고, 패널은 청와대의 압력으로 출연이 정지됐다. 이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2015년 1월 말에 폐지되었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KBS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뉴스프로그램에 개입한 사실도 녹음파일로 확인된 바 있다.
셋째, 청와대는 소송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13년 10월 청와대의 ‘불통’을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한 국민일보에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일보가 보도를 취하하자, 결국 소도 취하됐다. 2014년 4월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이 한겨레신문과 CBS를, 동년 11월에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의혹을 제기한 세계일보를 제소했다. 2016년에는 시사저널,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이 줄줄이 고소당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2월 25일부터 2016년 11월 말까지 청와대가 보도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알려진 것만 17건이다. 같은 기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한 것도 11건이었다.
보수단체를 활용한 대리소송에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가토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은 자유청년연합을 비롯한 보수단체였다. 가토 전 지국장은 2014년 8월 3일 기명칼럼에서 조선일보의 기사를 인용해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과 정윤회가 만났다는 소문을 보도했다. 최근에는 최순실의 태블릿PC를 입수해 국정개입의혹을 보도한 JTBC의 손석희 사장도 어버이연합로부터 고발당했다.
가토 전 서울지국장의 기소에 청와대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2014년 10월 가토 전 지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지만, 2015년 12월에 무죄판결이 나왔다. 김영한 비망록에 따르면, 2014년 8월 7일자 메모에 “산케이 잊으면 안된다. 응징해야. List 만들어 보고, 추적하여 처단토록 정보수집. 경찰, 국정원을 팀 구성토록”이라고 적혀 있다. 검찰의 항소포기로 일단락되었지만,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넷째, 규제기관을 통한 통제이다. 판사 출신인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이길영 KBS 이사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퇴 이틀 뒤에 방통위는 후임으로 보수역사학자로 알려진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이사장으로 추천했다. KBS노조는 청와대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는 비판적인 위원을 사퇴로 몬 뒤, 보수성향 인사나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채워졌다. 방심위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심의하는 독립규제기관이다. 그러나 심의조치를 강화해 제작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있다. 2014년 1월 방심위는 CBS라디오 프로그램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했다며 중징계인 ‘주의’를 내렸다. 행정지도가 아닌 ‘주의’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시에 감점을 받는다. 그러나 재판소는 2015년 12월 말에 방통위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마지막으로 채찍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이나 정부에 우호적인 보도기관에는 ‘당근’을 아끼지 않았다. 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에 따르면, 박 정권에서는 정부광고가 급증됐는데, 그 대부분은 보수언론과 지상파에 출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정부광고는 전년대비 23% 증가한 5,779억원이었다. 이외에 20~30%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광고비는 주요신문과 지상파방송에 집중적으로 제공되었다.
2011년부터 2016년 5월까지 정부광고비는 2조 5,968억원에 이르렀다. 이중 인쇄광고가 40%, 방송광고는 27%, 인터넷광고는 11%이었다. 이 기간동안 주요신문에는 3,721억원이 투입됐다. 동아일보 457억원, 조선일보 430억원, 중앙일보 413억원의 순이었다. 지상파 3사에는 4,367억원을 집행했다. 방송사별로는 KBS에 1,546억원, MBC에 1,526억원, SBS에 1,294억원이 집행됐다. 반면 종편에서는 MBN이 96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JTBC는 54억원으로 가장 적었다. 보수언론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박 정권에서는 방송사의 뉴스캐스터나 보도국장 출신자를 청와대 홍보수석에 다수 기용했다. 현재 정연국 대변인은 MBC 기자 출신으로 메인뉴스와 토론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시사제작국장을 거쳐 청와대로 옮겼다. 전임 민경욱 대변인 역시 KBS 메인뉴스 앵커를 그만둔 지 4달만에 청와대로 직행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이정현 홍보수석의 후임으로 임명된 윤두현 홍보수석은 YTN 보도국장을 지냈다. 그의 뒤를 이은 김성우 전 홍보수석은 SBS 기자 출신이며, 현 배성례 홍보수석도 KBS와 SBS에서 기자를 역임했다.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 온 저널리스트가 비판의 대상에 합류하는 이상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질문을 안하는, 아니면 못하는 출입처기자도 비판을 받았다. 특히 청와대 출입기자는 대통령이나 대변인의 입만 바라보며 받아쓰는 ‘발표저널리즘’에 빠져 있다. 방송업계에서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더라도 기자는 질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부에서는 청와대 출입기자가 취재보다는 청와대에 모이는 고급정보를 경영진이나 데스크에 보고하거나 자사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창구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나올 정도다.
짖지 못하는 감시견. 지금도 언론은 짖지 못하고 있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이 그 기능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제도로서의 가치는 사라진다. 시민들이 위임한 제4권력은 탄핵을 부를 수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방송미디어에서 소셜미디어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방송저널리즘이 스스로 자처한 것이다. 방송저널리즘은 냄비 속 개구리처럼 곧 닥칠 위기를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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