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정부와 언론의 관계에 대한 논의했다. 이전 논의는 다음 글(적대와 경쟁 역동, 공격견과 스핀닥터)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여기에서는 정부와 공영방송의 특별한 관계를 짚어 보고자 한다. 공영방송은 그 어떤 미디어보다 정부와 관계가 가까워 때론 국영방송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현재 미디어 시스템에서 가장 모순은 공영방송에 집중된다. 공영방송은 법적인 규범에 의거해 조직된 공적 방송 시스템(pubic broadcasting system)이다. 그 운영은 시청자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신료를 재원으로 한다. 그런데 독립규제기관이나 정부의 규제를 받는다.
이러한 모순은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일단 공영방송과 정부의 관계는 복잡하고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사회제도와 공공정책의 틀속에서 운영되는 방송은 정부 혹은 정치권력과 쉽게 대결하지 못한다.
공영방송에 한정해 보면, 정부와 정치권력은 방송면허, 인사권, 예산승인 등을 통해 공영방송을 통제하고자 한다. 이는 BBC, NHK, KBS 등에 공통된다. 통제의 정도는 조직문화나 정부의 성격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
공영방송과 정부의 관계는, 우선 방송면허에서 논의할 수 있다. 공영방송의 방송면허는 독립규제기관이나 정부부처에서 담당한다. BBC는 10년마다 특허장을 갱신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은 영국정부이다. 영국정부는 방송백서를 통해 BBC 특허장 논의의 방향을 정한다. 방송백서에는 BBC를 위협하는 의제도 포함된다.
한편 NHK는 다른 방송사업자와 마찬가지로 5년마다 방송면허를 교부받는다. 이 과정에서 총무성은 다양한 것을 요구한다. 면허갱신은 형식적인 절차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절차는 정하는 것은 총무성이며, 다양한 규칙과 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
정부와 정치권력은 공영방송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다. 직접적인 통제가 아니라 우회적인 방법을 활용한다. BBC는 BBC트러스트, NHK는 경영위원회라는 중간시스템이 있다. 정부는 의회의 승인을 거쳐 이들 조직의 구성원을 임명한다. 이들 대리인은 BBC 사장, NHK 회장을 임명한다.
NHK의 경우, 경영위원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 총리가 임명한다. 그런데 경영위원 후보는 총무성에서 작성해 총리실에 넘긴다. 국회는 자민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가 경영위원이 되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구성된 경영위원회는 NHK 회장을 선임한다. 회장 임명에는 12명의 경영위원 가운데 9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3명 이상 반대하면 회장 선임을 불가능하다. 이러한 인선시스템은 비판적인 회장을 배제하는 역할을 한다. 총리실이 국회에 경영위원 후보를 넘기기 때문에 경영위원 4명을 장악하면 원하지 않는 회장을 임명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음으로 정부는 공영방송의 재원을 쥐고 있다. BBC는 재원 70%를 수신료에 의존한다. NHK는 광고방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97%가 수신료 수입이다. 영국 정부는 수신료를 2024년까지 동결한 뒤, 2028년부터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실현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BBC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NHK는 더욱 복잡하다. 매년 예산안, 사업계획, 자금계획 등을 경영위원회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과정은 마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처럼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블랙홀이 거쳐야 한다.
우선 경영위원회가 의결한 뒤, 이를 총무성에 제출한다. 총무성은 전파감리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총무성 장관의 의견을 첨부한 뒤, 내각으로 보낸다. 내각에서는 국무회의와 같은 각의에 정부안을 의결한 뒤 국회로 보낸다.
국회에서는 중의원의 총무위원회와 본회의을 거쳐야 하며, 이는 다시 참의원 총무위원회와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된다. 수신료도 예산의 승인을 통해 결정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나 국회의원은 다양한 요구를 늘어 놓는다.
NHK 회장이나 부회장, 이사 등은 심의과정에 수시로 불려가 정치가의 질의에 답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가는 수신료를 ‘인질’로 잡고, 보도태도와 프로그램에도 관여했다. NHK는 최대한 몸을 낮춰 정부와 정치가의 요구를 들어주며, 자주규제를 강화해 트러블을 해소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이것만은 아니다. 정부는 법령제안권과 사업의 허인가권을 쥐고 있다. 미디어기술의 변화와 관련된 진흥정책과 같은 경제적인 조건을 내세워 정치적인 거래를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현재 디지털화 네트워크화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드는 새로운 미디어환경이다.
NHK의 사업을 규제하는 총무성은 NHK의 신규사업이나 국제방송, 그룹운영 등에 이르기까지 간섭한다. 부가서비스의 해석권한은 총무성에 있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사업이나 국제방송 등은 총무성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그 운영에서도 다양한 요구가 반영된다.
최근 인터넷 사업을 방송과 같은 필수업무로 규정하는 방송법 개정과정에서 총무성은 검토회라는 장에서 미디어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며 NHK에 다양한 요구를 쏟아 놓았다. 총무성의 검토회에 대해서는 외부 인사가 위원으로 참가하지만 그 밑그림은 총무성 공무원이 짠다.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복잡하며 양자의 거래는 커튼 속에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공영방송과 정보의 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특히 최근 디지털화나 네트워크화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지만, 공영방송 스스로 위상을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다.
정부와 언론의 관계, 공영방송과 정부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우호적일 뿐만 아니라 경쟁적이며, 적대적이기도 하다. 갈등관계 속에서도 정부에 끌려가지 않고 보도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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