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경보를 울리도록 위임받는 제4의 권력이다. 감시 대상인 권력에는 정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있는 세력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세력도 포함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적 권력은 정치적 권력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광고에 의존하는 언론은 대기업에 눈치를 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성역’이라고도 불리는 경제적 권력 가운데 대형 매니지먼트가 있다. 특히 방송사에게 대형 매니지먼트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이다.
최근 매니지먼트가 대형화되면서 유명한 연예인을 수백명 거느린 매니지먼트가 늘어나고 있다. 거물급 연예인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대형 엔터테인먼트는 방송사에 출연자를 공급한다. 프로그램 제작의 중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공급처인 것이다.
2023년 3월 영국의 BBC는 쟈니스사무소(ジャニーズ事務所) 설립자 자니 키타가와(ジャニー喜多川)의 성폭력을 폭로했다. 그는 소속사의 소년과 미성년 남성을 1970년대 초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래 이 문제는 주간분슌(週刊文春)이 1999년에 고발했다. 당시 신문과 방송은 침묵했다. 짖지 않았다.
주간분슌은 1999년 10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14회에 걸쳐 키타가와의 성폭력을 폭로했다. 쟈니스 소속 소년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특집을 기획했다. 그러나 당시 신문과 방송은 인용보도를 하지 않았다. 반면 쟈니스사무소는 사실무근이라며 주간분슌을 명예훼손으로 제소했다.
1심인 도쿄지방법원은 2002년 3월 소년들의 진술에는 고도의 신용성이 없고 성폭행 행위가 진실이라는 증명은 없다며 주간분슌에 배상을 명했다. 2심인 도쿄고등법원은 2023년 7월 증언을 신용할 수 있으며, 소년에 대한 성폭행 관련 기사는 진실이라며 키타가와의 성폭력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대법원은 2004년 2월 쟈니스사무소의 상고를 기각, 키타가와의 성폭력을 인정한 2심을 확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을 보도한 것은 아사히신문 등 극히 일부였다. 방송사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왜 신문과 방송은 판결을 보도하지 않고 침묵했을까?
20년이 지난 2023년 3월 7일 BBC가 다큐멘터리 ‘J-POP의 폭식자: 숨겨진 스캔들’(Predator: The Secret Scandal of J-Pop)를 방송하자 일본의 연예계와 미디어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방송 이후 일본외국특파원협회가 4월에 쟈니스사무소 소속 피해자 기자회견을 개최해 피해자가 실명과 얼굴을 내세워 증언했다. 이러한 해외미디어의 움직임에 일본 언론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쟈니스사무소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쟈니스사무소의 공식적인 반응은 외국인특파원협회가 기자회견을 연 뒤 한달이 지나서야 나왔다. 그것도 홈페이지에 사장이 동영상에 출연해 사과하는 것이었다. 기자회견을 개최해 사과해야 할 일이었다.
이후 쟈미스사무소는 재발방지팀을 설치했으며, 8월 말에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설립자 키타가와가 40여년에 걸친 장기간 소속 미성년자를 반복적으로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발방지팀이 키타가와의 성폭력이 장기간 반복된 원인의 하나로 지적한 것은 언론의 침묵이었다.
언론이 문제를 조기에 적극적으로 보도했다면 문제가 확대되지는 않았다는 사전약방문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키타가와와 쟈니시사무소가 짖지 않은 언론 때문에 자정능력을 잃고 은폐로 일관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쟈니스사무소는 9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키타가와의 성폭력을 인정하고 사과한 뒤, 사장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했다. 신임사장이 성폭력 피해자 보상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일주일 뒤에 피해자구제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쟈니스사무소는 10월 2일 두번째 기자회견을 열어 사명을 변경해 피해자구제를 마친 뒤, 폐업하고, 매니지먼트는 새로운 회사로 이관하겠다고 했다.
키타가와의 지속적인 성폭력은 신문과 방송에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침묵으로 일관했다. 특히 쟈니스사무소와 공생관계에 있는 방송사는 철저하게 사실을 외면했다. NHK와 민방은 드라마와 쇼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뉴스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쟈니스사무소 소속 연예인을 적극적으로 캐스탱해 왔다.
주간분슌의 폭로와 판결에 침묵했던 신문과 방송은 문제가 커지자 그제서야 자기반성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사히신문이 6월 29일 자사를 포함한 전국지 4사, NHK와 민방의 보도태도를 검증했다. 아사히신문은 성폭력 특히 남성에 대한 성폭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반성했다.
한편 방송사는 BBC가 방송한 지 6개월이 지난 9월에 들어서야 검증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하기 시작했다. 우선 NHK는 9월 11일 뉴스해설프로그램에서 다루었다. 이후 10월 4일 NTV, 10월 7일 TBS가 감시를 소홀히 한 경위를 보도했다. 후지TV는 10월 21일, TV도쿄는 10월 17일에 방송했으며, TV아사히가 11월 12일 특집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이들 검증프로그램은 주간분슌이 키타가와의 성폭령을 폭로한 1999년과 대법원 판결이 나온 2004년에 보도하지 않은 점을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인권의식이 약하고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낮아 보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거대 매니지먼트의 연예인을 기용하기 위해 눈치를 보느라 감시를 외면한 것에 있다.
방송사는 피해자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이 충분히 이루어질 때까지 쟈니스사무소와 후속 회사 소속 탤런트를 기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실제 2024년 봄 프로그램개편에서 NHK와 민방은 쟈니스사무소 소속 연예인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에서도 이들을 모두 배제했다.
방송사에 쟈니스사무소 소속 연예인은 시청률 보장수표와 같다. 방송사는 쟈니스사무소가 일본 최대규모의 연예매니지먼트로 몸집이 커지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권력관계는 뒤바뀌어 이젠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거대 매니지먼트의 비리를 외면한 사이에 피해자는 더욱 늘어났다.
혹자는 언론의 기능이 변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언론이 존재하는 한 감시견 기능은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 물론 감시견 기능을 하나의 역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프레임이나 어젠더 설정 등 좀더 고상하고 그럴듯한 기능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짖지 못하는 감시견이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제도적 측면에서 짖지 못하는 감시견은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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