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 비닉과 직업윤리
취재원 비닉은 취재할 때 취재대상인 취재원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자의 의무인 동시에 권리로 인정된다. 이에 한국에서는 취재원 비닉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한다.
취재원 비닉은 취재원과의 신뢰관계를 보호하는 동시에 취재원을 위축시키지 않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전달하는 것이 알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규범이다. 취재원 비닉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야 할 저널리즘의 직업윤리로 여겨진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은 사실이나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데, 기자와 정보제공자간에 취재원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신뢰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러한 약속을 기자가 저버린다면 용기를 내어 정보를 제공하거나 내부고발을 하지 않게 된다.
미국에서는 ‘쉴드법’(shield law)에 의거해 취재원의 비닉을 보호하는 주가 많다. 그러나 연방 차원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5년 7월 뉴욕타임스 기자가 취재원 관련 증언을 거부해 법정모욕죄로 수감된 적 있다. 당시 해당 기자는 법정 증언에서 CIA 정보원의 신분을 언론에 누설한 정부 고위관료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단은 엇갈린다. 위 뉴욕타임스 기자의 경우, 2014년 연방대법원은 법정 증언을 거부한 뉴욕타임스 기자의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같은 해 연방대법원은 폭스뉴스 기자의 취재원 공개거부를 인정하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일본 대법원의 판단
일본에서는 제도상 명시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에서 의사와 간호사, 변호사 등 직업상 기밀에 관한 증언거부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기자도 여기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다. 그 대표적인 판례로 2006년에 일본 대법원은 취재원 비닉을 인정한 판단을 내렸다. 기자도 증언거부권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 건강식품회사 일본법인에 대한 과세 처분 보도에서 NHK 기자와 요미우리신문 기자가 취재원 관련 법정 증언을 거부했다. 도쿄지방법원은 취재원 비닉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도쿄고등법원은 민사소송법을 인정해 직업의 비밀로 보호받을 여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2006년 대법원은 보도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취재원과 관련된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은 취재원 비닉에 대한 첫번째 판례로 주목을 받았다.
1997년 NHK와 요미우리신문, 교도통신이 미국 건강식품회사 일본법인이 77억 엔의 소득을 숨겼다며, 추징과세를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그뒤 추징과세는 대폭 감액되었기 때문에 미국 건강식품회사 본사가 잘못된 내용을 세무당국이 일본의 국세청에 전달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손해를 입었다며 미국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소송에서 일본 법원은 미국 법원을 대신해 언론사 기자에게 취재원을 밝히도록 요구받았다.
NHK 기자는 취재원 비닉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도쿄지법은 요미우리신문 기자에 대해 취재원이 국세청 직원인 경우, 비밀유지 의무를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증언거부는 범죄행위의 은폐에 가담하는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도쿄지법은 정보 누설이 위법행위인 경우에는 취재원 비닉은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촉탁심문).
결국 대법원은 취재원이 일반적으로 함부로 정보를 공개하면 보도관계자와 취재원과의 신뢰관계가 깨져 자유로운 취재활동이 어려워져 보도기관의 업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민사소송법에서 증언거부를 할 수 있는 직업의 비밀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러나 증언거부가 인정되는 것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비밀만을 인정했다.
보도가 민주주의사회에서 국민이 국정에 관여하는데 중요한 판단자료를 제공하고 국민의 알권리에 봉사한다며 사실보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고 했다. 취재방법이 위법인 경우, 취재원이 공개를 인정한 경우,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해 증언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기자는 증언을 거절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요미우리신문 기자와 교도통신 기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 정보를 얻은 취재원의 소속과 수 등도 증언거부 사항으로 인정했다. 교도통신 기자에 대해서는 정보제공이 법률을 위반하거나 그 내용이 내부고발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취재원 비닉은 인정받는다고 했다.
한국의 취재원 비닉권
한국은 어떨까? 최근 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허위 인터뷰 의혹을 수사하면서 뉴스타파와 JTBC의 취재와 보도 과정을 조사하겠다며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에 한국기자협회와 전언론노동조합 등 11개 단체는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을 비판했다.
기자의 취재원 비닉을 명시한 법률은 없다. 다만 민사소송법에서 증언거부권(제315조)을 규정하고 있다. 즉 변호사, 변리사, 공증인, 공인회계사, 세무사, 의료인, 약사 등은 직무상 비밀에 속하는 사항은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에서도 업무상 비밀과 증언거부(149조)를 규정하고 있다. 민사소송법의 직업 이외에 대서업자와 치과의사, 한의사, 약제사, 조산원, 종교인 등까지 포함시켰다.
문제는 기자의 취재원 비닉도 이러한 법률애서 규정한 직업의 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이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취재원에 대한 증언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언론의 자유와 충돌하기 때문에 기자의 취재원 비닉은 형사소송법을 유추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반면 형사소송법에서는 업무상 비밀과 증언거부 업종을 제한적으로 열거한 것이며, 기자의 취재원 비닉을 해당하는 않는다는 입장도 있다. 소극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 누구를 위한 언론의 자유인가
결국 취재원 비닉은 그것이 누구를 위해 보호되어야 하는가에 있다. 권력자의 명예훼손인가 아니면 국민의 알권리인가를 따져 봐야 한다.
일부 전문가는 헌법에서 취재원 비닉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헌법에서는 언론・출판의 자유(제21조)를 보장하고 있는데, 취재원 비닉이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와 보도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취재원 비닉은 언론・출판의 자유의 핵심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