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사② 요미우리신문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일간지이며, 가장 영향력이 큰 신문이기도 합니다. 요미우리신문의 역사와 논조, 발전과정은 일본 언론의 변화와 모순을 잘 보여줍니다. 요미우리신문의 역사와 논조, 경영상황, 디지털 전략 등을 정리합니다.

1. 요미우리신문의 역사

1.1 요미우리신문 창간

요미우리신문은 1874년 도쿄에서 창간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대중들에게 뉴스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타블로이 신문이었습니다. 창간 1년 만에 일간지로 전환했으며, 발행부수는 1만 7,000부에 이르렀습니다. 1897년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미우리신문 1874년 창간

요미우리라는 제호는 에도시대에 가와라반(瓦版)이라는 초기 신문이 있었습니다. 이를 읽으면서 판매한다는 의미로 요미우리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일간신문으로 변모했으며, 1917년에 요미우리신문사로 바꿨습니다. 1924년 신문사의 경영권이 쇼리쿠 마츠타로로 넘어가면서 요미우리신문은 현대적인 신문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1.2 쇼리쿠 마츠타로

요미우리신문을 거대 미디어기업으로 발전시킨 것은 쇼리쿠 마츠타로입니다. 쇼리쿠는 다양한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요, 요미우리신문의 사주로 ‘요미우리신문 발전의 아버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주를 지내며 프로야구를 발전시킨 ‘프로야구의 아버지’, 방송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한 ‘방송의 아버지’, 원전을 추진하는데 공헌한 ‘원자력의 아버지’ 등으로 불립니다.

요미우리신문 발전의 아버지, 쇼리쿠 마츠타로

경찰 출신인 쇼리쿠는 1940년 우익 정치단체인 대정익찬회에 총무가 되면서 정계에 진출합니다. 대정익찬회는 전범인 코노에 후미마로, 도조 히데키, 고이소 쿠니아키 등이 총재를 지냈습니다. 패전 이후 쇼리쿠는 A급전범으로 투옥되었으며, 1947년에 석방되었습니다.

쇼리쿠는 석방되자자마 요미우리신문을 전국지로 발전시킵니다. 1952년에 오사카와 삿포로로 진출한 뒤, 1964년에 큐슈에 지사를 설치하면서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국신문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쇼리쿠는 지상파 민방 NTV 사장, 요미우리TV 회장 등을 역임하며 거대 미디어기업을 이끌었습니다.

2. 요미우리신문의 발전

2.1 요미우리 투쟁

패전 이후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의 경제적 부흥과 함께 급성장을 거듭해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사 중 하나로 발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요미우리 투쟁입니다. 이는 전쟁에 부역한 책임을 따지고 사내 민주화를 주장하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요미우리신문 1874년 창간
요미우리신문, 패전 이후 급성장

패전 직후 요리우리신문 종업원은 쇼리쿠를 포함한 경영진의 전쟁책임과 사내 조직 민주화, 처우개선 등 5개항의 요구를 내세우며 편집과 제작, 발송을 자율 관리하는 생산관리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노조가 승리해 경영과 편집을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해 미군 점령군(GHQ)의 신문지침을 위반했다며 노조로부터 편집권을 빼앗기 위해 탄압하자 두번째 투쟁에 들어갔습니다. 노조는 편집권과 부당노동을 비판하며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이는 언론 총파업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2.2 발행부수 세계 1위

노조의 민주화운동을 얽누른 뒤에 요미우리신문은 주식회사로 전환한 뒤, 전국신문으로 발전하며 방송사업에 손을 뻗쳤습니다. 1953년에 NTV에 출자해 지상파방송이 시작됐고, 1958년에는 오사카에 요리우리TV이 시작되면서 신문과 방송을 묶는 미디어기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요미우리신문

경제성장과 함께 발행부수는 급속하게 늘어났습니다. 1958년에 300만 부를, 1967년에 500만 부를 돌파했습니다. 1977년에는 발행부수 720만 부로 아사히신문을 제치고 일본 1위에 올랐습니다. 1994년에는 발행부수 1,000만 부를 돌파했으며, 2001년에는 1,031만 부, 2007년에는 조간과 석간을 합쳐 발행부수가 1,400만 부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이 되었습니다.

2.3 나베츠네

요미우리신문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은 와타나베 츠네오인데요, 업계에서는 나베츠네로 불립니다. 그는 정치부 기자로 출발해 자민당 거물 정치가를 전담하는 기자로 성장했습니다. 1977년에 편집국장에 취임한 뒤, 사설을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며 정치권에 영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미우리신문 논조와 와타나베 츠네오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대에 평화헌법 개정에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던 때에 헌법 제9조 개헌을 주장하는 사설과 기사를 발표하며 개헌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금기시되었던 개헌론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여론도 돌아서기 시작해 찬성이 반대를 웃돌기도 했습니다.

나베츠네는 1996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주가 되었으며, 2005년에는 요리우리신문사 회장에 오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베츠네는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대합니다. A급전범이 합사된 곳이 아니라 이를 분리하고 종교와 관계없는 국립 전몰자 추도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요미우리신문의 논조와 경영상황

3.1 요미우이신문의 논조

요미우리신문의 논조는 일반적으로 보수적, 혹은 우익으로 평가됩니다. 우익을 대표하는 산케이신문과 비교한다면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자민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개헌과 외교, 국방에서는 우익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미우리신문과 자민당의 관계

이러한 요미우리신문의 논조는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과 비교되는데요, 요미우리신문이 패전 이후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아사히신문과 경쟁하면서 우익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미디어시장에 맞는 논조를 유지한 것입니다. 이에 정치적 입장에서 일본 신문은 우익과 보수, 중도, 진보로 분명하게 나뉩니다.

3.2 경영상황

요미우리신문은 지주회사 요미우리그룹에 속해 있습니다. 대표는 나베츠네입니다. 주주구성은 요미우리그룹 본사 임원지분이 34.32%, 쇼리쿠후생회가 20.98%, 요미우리사업단이 9.79%, 세키네 타츠오가 7.83%, 요리우리이공학원이 6.04% 등입니다. 쇼리쿠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입니다.

그룹에는 요미우리신문 도쿄본사와 오사카본사, 서부본사가 있고, 요리우리 자이언츠와 중앙공론사, 요미우리랜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계열사의 총매출은 2005년에 4,878억 엔이었는데요, 이후 감소가 계속돼 2014년에 3,982억 엔으로 줄어든 뒤, 2023년에는 2,588억 엔으로 감소했습니다.

요미우리그룹은 계열 자화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관련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대한 관련회사도 거느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고치신문사, NTV홀딩스, 요리우리정보개발, 요리우리여행, 요미우리교향악단, 요리우리문화센터, 요리우리부동산, 요리우리에이전시, 도쿄돔 등이 있습니다.

요미우리그룹과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미우리그룹은 신문 판매뿐만 아니라 광고 수익, 이벤트, 출판, 방송, 스포츠팀 운영, 부동산, 정보서비스, 여행, 운송 등 다양한 수익원을 통해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 계열사는 요미우리신문의 영향력을 이용해 성장했으며, 최근에는 요미우리그룹의 미디어 전략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자회사와 관련회사를 포함한 요미우리그룹의 매출은 1조 엔에 이릅니다.

4. 요리우리신문의 미래

최근 전세계적으로 신문은 사양산업이 되고 있으며, 일본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 1위의 발행부수를 자랑했던 요미우리신문도 발행부수가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 발행부수가 699만 부로 감소했으며, 2024년에는 598만 부로 추락했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의 미래
요미우리신문의 미래

디지털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요미우리신문도 디지털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온라인 뉴스 포털을 통해 뉴스와 기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모바일 구독을 통해 수익 모델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광고를 통한 수익 창출도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데이터 저널리즘과 AI기술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빅데이터 기반의 분석 기사와 혁신적인 뉴스 제공 방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은 디지털의 태풍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레거시 언론의 대표였던 요미우리신문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전통적 미디어로서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디지털 혁신을 통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할 지 주목됩니다.